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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상

여행의 이유: 알코올

[17/365프로젝트] 여행의 이유: 알코올

내가 소주 한잔을 마실 동안
그는 벌컥 세잔을 들이켰다.

술을 못하는 내게도
첫 잔은 달았다.

그리고 또 한잔을 마셨다.
그 역시 또 세잔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술이 가장 좋다며 한잔을 더 들이켰다.

이상한 일이다.
소주 한 병에 단맛은 어디서 나는 걸까

나와 첫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세상에서 소주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단맛, 내가 지은 것.

 

'알코올 쓰레기', '가성비 최고'

위의 수식어는 술자리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나도 오렌지주스처럼 술이 술술 들이켜지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해 봤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알코올이 몸에 안 받으니 많이 마실수가 없다. 

 

딱 만 19세가 됐던 날 친구들과 홍대로 술을 마시러 갔었다. 당당하게 민증을 보여주고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황금빛 치킨 튀김이 바삭한 게 참 맛있었다. 맥주 맛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로도 술자리에서 소주던, 맥주던, 와인이던 몇 모금을 마시는 게 끝이었다. 그 몇 모금도 딱 첫 입의 달달함 때문에 먹을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술례길

요즘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와인이나 과일로 만든 맥주는 술술 들어간다. 과일 덕에 알코올의 씁쓸한 맛보다 단 맛을 느끼기 시작해서 마치 음료수 같다. 예전에는 함께 할 자리에서 절대 술의 'ㅅ'자도 꺼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술을 배우고 알코올이 참 좋아졌다.

 

순례길에서 매일 열심히 땀을 내어 걷고 식당에 가면 자연스럽게 맥주나 와인을 먹었다. 순례자 메뉴에 거의 와인 한 병이 포함되어 있고, 맥주도 정말 싸다. 35일 내내 술을 먹는데 어떻게 술맛을 모를 수가 있을까? 크흐 스페인 하늘의 노을을 바라보며 와인을 병째 들이키던 일이 아직도 머리에 또렷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와서 알코올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순례길에서의 맛이 생각나기도 하고, 씁쓸한 인생의 맛을 위해 단맛이 생각날 때도 있었다. 이제야 왜 알코올이 달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여행에서 맛본 가장 달았던 알코올의 맛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