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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상

여행의 이유: 불안.

[1/365프로젝트] 여행의 이유: 불안


세상에서 여행이 가장 싫어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는 가장 좋아하던 여행이 가장 싫어졌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최근에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얘기를 하니 "너 여행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절대 여행으로 순례길을 다녀올 생각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뭘로 간 거야?"라고 되묻는다. "음....... 사는 게 힘들어서". "엥?" 모두의 반응이 같았다. 되돌아보니 내면의 성장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질렸으면 여행을 떠났다고 말하지 않는 걸까?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유

먼저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유와 싫어하게 된 이유를 찾아봤다. 먼저,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10년 전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을 때였다. 따분한 공부는 싫었고 흥미로워 보이는 관광을 골랐다. 인문계에 진학해 불안한 미래보다는 내가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했다. 중학교 때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항상 점수가 낮아 신나게 맞았던 기억만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들으니깐 공부가 하고 싶고 성적이 잘 나왔고 선생님들도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그래서 "이 길이 내 길이다." 하고 대학교도 관광과를 회사도 여행사를 들어가게 됐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여행이 좋았다. 새로운 것에 대해 설렜고, 여행 갈 생각에 매일 비행기표를 알아봤을 정도다. 여행도 참 많이 갔었다.

 

여행을 싫어하게 된 이유

문제는 여행이 좋아서 갖게 된 꿈. "외국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기"가 여행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졸업 후 미국에서 8개월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기회를 얻기 위해 9년을 노력했다고 믿었고, 2개월의 어학연수와 6개월의 인턴업무를 했다. 내가 생각한 외국의 삶은 새로움으로 가득 찬 것이 었는데 매일이 불안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인 미국인들이 낯설었고, 친구가 없었고, 무급인턴이었고, LA에서 차로 2시간 달려 가야 나오는 시골에 살았다. 시골에 살면... 더 현지인처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철저하게 혼자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했다. 그 과정이 여행을, 새로운 것이라는 자체를 질리게 만들었다. 너무 힘들었으니깐... 미국에서 내 존재는 이방인 딱 그뿐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보다는 그냥 지금 여기에서 내가 행복한 일이 더 중요했다.

 

여행이 좋아진 이유가 여행이 싫어진 이유가 됐다. 불안을 피해 여행을 선택했고 불안해서 다시 정체를 선택했다. 

 

그래도 여행이 좋다.

얼마 전 동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가자". 동생이 말했다.

"지금 불안해서 여행을 가면 갔다 온 후에 똑같이 불안할 거야. 대안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가는 여행을 가자".

 

내 다음 여행지는 어딜까?

여러분의 다음 여행지는 어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