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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상

여행의 이유: 비움.

[3/365 프로젝트] 여행의 이유: 비움


잠시 자리 비우겠습니다.

아니, 좀 오래 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잠시 자리 비우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두 달 정도 자리 비우겠습니다.'라는 말이 통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비운만큼 더 잘 채울 수 있을 텐데...

 

1년 정도 야간대학을 다니며 낮에는 회사를 다녔다. 그래야만 나의 스펙과 지식과 노력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일 울었다. 빙빙 도는 2호선 지하철에 앉아서도 울고, 퇴근 후 끼니도 거르고 강의실로 뛰어가면서도 울고, 또다시 지하철을 타서 집 앞에 도착하는 밤 12시에도 울었다. 나를 너무 꽉 채우려고 한 건 아닐까?

 

잠시만, 잠시만 내 자리를 비워두고 파리와 스페인으로 떠났다. 첫 유럽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였고, 모든 게 반짝반짝 빛났다. 오줌 냄새가 나는 파리의 지하철도 그곳의 잡상인도 그래 보였다. 프랑스의 몽생미셸, 에펠탑과 스페인의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진짜 빛났다. 빛나는 것으로 나를 채우니 세상이 다시 보였다. 마음이 열렸고, 눈물과 콧물 대신 흥얼거리는 콧소리와 웃음이 났다. 

 

귀국 후에 억지로 채워진 듯한 회사를 퇴사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면 반짝이는 눈을 갖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렇게 여행은 비움을 통해 새로운 것에 대해 반짝이는 눈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비움의 시간이 있어야 새로움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비우는 게 익숙하지 않다.

인생의 의문이 하나 더 추가됐다.

당신에게 비움이란 무엇인가요?